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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조의 통주 삼수채 전투가 있던 지역인 철산군의 전설

 강조의 통주 삼수채 전투가 있던 지역인 철산군의 전설 "혹시 전설이나 민담 하나 하나에도 강조가 반역자라서 이름을 대놓고 언급하지못하고 암호로서 표현하는 이야기가 있을 수 있으니 철저히 찾아야할 것입니다."_풍쿠 수령의 교시  ================ 이 고장의 설화로는 「범과 토끼의 이야기」가 전한다. 옛날 소금장수가 소에다 소금을 싣고 산골로 소금을 팔러 나갔다. 날이 저물어 어떤 집에 들어가서 주인을 불러 하루를 묵자고 하였다. 허락을 받고 소금장수는 그 집에 들어가서 소금짐을 밖에 놓고, 소는 외양간에 매어 두고는 소의 목에 달았던 방울을 떼어가지고 방으로 가지고 왔다. 주인은 그 방울을 보더니 그것은 무엇을 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이건 범을 잡는 방울인데, 범이 나왔을 때 이것을 놓아두면 범의 불알에 달라붙어 죽이는 방울입니다. 이곳에는 범이 없겠지요.” 하고 말하였다. 이 집은 백호가 사람으로 둔갑해서 살고 있는 집이었는데, 이 백호는 길가는 사람이 하루를 묵고 가면 저녁에 잡아먹고 하는 것이었다. 소금장수는 이 집이 백호가 사는 집이라는 것을 알고 말하였다. 밤이 되어서 자게 되었는데, 자다가 가만히 눈을 떠보니 주인은 백호가 되어서 자고 있었다. 소금장수는 방울을 백호불알에 매어놓고는 밖으로 나가 버렸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니까 불알에 방울이 달려서 딸랑딸랑 소리가 났다. 백호는 놀라서 뛰었다. 그런데 백호가 뛰면 뛸수록 불알에서는 방울소리가 더욱 요란하게 났다. 백호는 자꾸자꾸 뛰어서 산으로 올라갔는데, 방울이 가시덤불에 걸려 떨어졌다. 백호는 방울이 다시 달라붙지 못하게 하느라고 뛰어가기만 하였다. 뛰어가다가 토끼를 만나 그 사실을 이야기하였다. 토끼는 백호의 말을 듣고 나서 “백호를 잡아먹는 방울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우리 함께 가서 찾아봅시다.” 하니 백호는 싫다고 하는데, 토끼는 자기 꼬리와 백호의 꼬리를 한데 잡아매고 갔다. 가시덤불에 걸려 있는 방울을 토끼가 보고서 이것을 발로 밟으라 하니, 방울이 딸랑거리...

강조가 거란과 싸운 곳은 철산군鐵山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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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조가 거란과 싸운 곳은 철산군鐵山郡? ==테마 음악=== https://youtu.be/NQpl9eugCv0?si=QDiwPbrAbgW4SG1S ======== [광해군일기[중초본] 147권, 광해 11년 12월 25일 갑술 2번째기사 1619년 명 만력(萬曆) 47년이시발이 국방과 국정 자강책을 건의하다  시발이 아뢰기를, "옛날 고려(高麗) 때 거란[契丹]이 철산군(鐵山郡)에 침략해 왔을 적에 검거(劍車)로 싸워서 이겼다고 합니다. 신이 저번 관서(關西)에 있을 적에 이 수레를 만들었는데, 야전(野戰)의 기구로 적합했습니다. 이에 지금 신이 내려가서 의논하여 만들려고 합니다. 대개 박이서(朴彛叙)가 이 수레의 제도를 자세히 알고 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여러 가지로 상의하여 만들도록 하라." 하였다.  時發 啓曰: "昔者高麗時, 契丹來寇鐵山郡, 以劍車勝戰矣。 臣頃在關西, 造作此車, 則可合野戰之具。 今臣下去欲爲議造 矣。 大槪 朴彛叙詳知此車制度矣。" 王曰: "多般商議爲之。"] [ //원문 元年五月, 契丹主以兆弑君, 欲發兵問罪. 王聞之, 以兆爲行營都統使, 鉉雲及兵部侍郞張延祐副之, 起居舍人郭元, 侍御史尹徵古, 都官員外郞盧戩爲判官, 右拾遺乘里仁, 西京掌書記崔冲並爲修製官. 檢校尙書右僕射上將軍安紹光爲行營都兵馬使, 御史中丞盧頲副之, 兵部郞中金爵賢及皇甫兪義爲判官. 少府監崔賢敏爲左軍兵馬使, 少府少監崔輔成副之, 興威衛錄事高幹, 大樂丞金在鎔爲判官. 刑部侍郞李昉爲右軍兵馬使, 刑部郞中金丁夢副之, 內謁者柳莊爲判官. 禮賓卿朴忠淑爲中軍兵馬使, 禮賓少卿李良弼副之, 尙書都事高延慶·司宰注簿庾伯符爲判官. 刑部尙書崔士威爲統軍使, 戶部侍郞宋隣副之, 左司員外郞皇甫申試·兵部員外郞元穎爲判官. 率兵三十萬, 軍于通州, 以備之. 十一月, 契丹主自將步騎四十萬, 號義軍天兵, 渡鴨綠江, 圍興化鎭. 兆引兵出通州城南, 分軍爲三, 隔水而陣. 一營于州西, 據三水之會, 兆居其中. 一營于近州之山, 一附城而營. 兆以劒車排陣, 契丹兵入, 則劒...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고려 검차劍車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고려 검차劍車 [광해군일기[중초본] 147권, 광해 11년 12월 25일 갑술 2번째기사 1619년 명 만력(萬曆) 47년이시발이 국방과 국정 자강책을 건의하다  시발이 아뢰기를, "옛날 고려(高麗) 때 거란[契丹]이 철산군(鐵山郡)에 침략해 왔을 적에 검거(劍車)로 싸워서 이겼다고 합니다. 신이 저번 관서(關西)에 있을 적에 이 수레를 만들었는데, 야전(野戰)의 기구로 적합했습니다. 이에 지금 신이 내려가서 의논하여 만들려고 합니다. 대개 박이서(朴彛叙)가 이 수레의 제도를 자세히 알고 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여러 가지로 상의하여 만들도록 하라." 하였다.  時發 啓曰: "昔者高麗時, 契丹來寇鐵山郡, 以劍車勝戰矣。 臣頃在關西, 造作此車, 則可合野戰之具。 今臣下去欲爲議造 矣。 大槪 朴彛叙詳知此車制度矣。" 王曰: "多般商議爲之。"] =============== 광해군일기[중초본] 147권, 광해 11년 12월 25일 갑술 2번째기사 1619년 명 만력(萬曆) 47년이시발이 국방과 국정 자강책을 건의하다국역원문중초본/정초본.원본 보기 왕이 인정전(仁政殿)에 나아가 찬획사 이시발(李時發)을 인견하였다. 승지 조찬한(趙纘韓)이 아뢰기를, "지금 대신들이 비국에 회좌하여 이시발과 함께 나아가 인대(引對)하여 수어(守禦)의 대책을 상의하려고 합니다." 하자, €ˆ이시발이 아뢰기를, "비국의 신하들이 성상을 가까이에서 뵙고 각기 소회를 진달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오늘은 날이 이미 늦었으니, 나중에 하는 것이 마땅하겠다." 하였다. 이시발이 아뢰기를, "신이 전에 함경도 관찰사가 되었을 적에 이미 이 적을 대항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적이 중국을 범하자 중국에서 한창 천하의 병마를 일으켜 요·광에서 수어하고 있으니, 아마 적의 형세가 이곳을 버리...